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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퇴직후에 한 일, 명상 (덕산 김동민 지음)

작성자관리자

  • 등록일 21-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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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퇴직하면서 전공서적을 몽땅 버렸습니다. 그 많던 환경공학 및 관련분야의 서적들을 몽땅 버렸고, 남은 서적들도 꽤나 없앴습니다. 망설여지고 아쉽고 했지만, 결단을 내렸습니다. 할 일이 있었고, 이 세상에 태어나 환경공학만 알고 죽기엔 그 일 말고도, 여생(餘生)이 너무 아까워 그리 했습니다.

  
그리고는 명상(瞑想)을 시작했습니다. 집에서 사찰에서 ……. 집에서는 아무리 가부좌(跏趺坐)를 틀고 앉아도 정신이 산만해지기 일쑤여서, 여러 해 후 선배교수께서 정진(精進) 중이던 서울 성북동의 길상사(吉祥寺)를 찾았는데, 그것이 절에서 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저가 해 온 명상은 치유(healing)명상이 아닙니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스트레스나 기타의 심적 고통을 다스리는, 정신치유명상이 아닙니다. 한참 더 들어가, 그런 괴로움을 안는 마음 그 자체를 송두리째 뽑아 없애는 명상입니다. 초월(超越)이라고도 하는데, 마음이 뽑혀 없어지면, 우리에게 당초부터 있었던 인식기능 내지는 의식기능이 사라집니다. 동시에 「나」와 「세계」도 사라집니다.


성인(聖人)들 말씀에 의하면, 「나」와 「세계」는 있는 것이 아닙니다. 환(幻)입니다. 가르침대로 명상 속에 깊이 들어가 마음을 없애면, 「나」와 「세계」가 사라지면서 그 뒤 진아(眞我, 참나)의 차원이 나타납니다. 그러면서 설명할 수 없는 지복(至福)을 안겨 줍니다. 압도하는 그 신비로운 체험의 충격으로 환이 무너지면서 마침내 성인들의 말씀을 몸으로 믿게 됩니다. 그리고는 잔잔한 희열(喜悅)과 함께, 마음의 평화를 누리면서 세상을 살게 됩니다.

저는, 그런 진리를 듣고 읽고 헤서 안 것이 아닙니다. 직고하건데, 제게는 숨겨온 비밀이 있는 즉 소년시절부터 만 44세 무렵까지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명상을 했던 그런 과거 행적이 있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계율적 삶을 살면서 그 짓을 했습니다. 성장기에는 누구나가 그렇습니다만, 저에게는 늘 정도(程度)를 넘는 유별난 의문과 번뇌가 있었습니다. 「삶」과 「죽음」과 「존재」 그리고 「세계」가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의문과 번뇌가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혼자 멍청히 앉아있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어머니께선 그런 저를 내쫓곤 하셨지만, 문밖 계단에서 한여름 땡 볓 아래서 시간 가는 줄 모르며 늘 그렇게 앉아 있었습니다.

저는 1931년생으로, 일제식민통치와 연이은 전쟁과 광복후의 혼란과 동족상잔의 625전쟁과 빈곤 굴욕 좌절을 몸으로 치르며 생존한 세대입니다. 게다가 조실부(早失父)하여 중학교 때부터 홀로서기에 내 몰리면서, 인생의 쓴 맛을 어릴 때부터 그리고 밑바닥부터 체험했습니다. 한데, 그런 고(苦) 내지는 고행(?)이 싸일수록 의문과 고민은 깊어만 갔습니다.

 
멍청히 앉아있으면 오만가지 상념(想念)들이 머릿속에서 일어나고 사라지고 합니다. 생각할 수 있는 것 상상할 수 있는 온갖 것들이 구름처럼 밀려왔다가는 사라지고 합니다. 그런 것들을 지켜보며, 피식 웃기도 하고 눈물짓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남들이 「이상한 아이」로 볼까봐 겁이 났지만, 습관은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어른이 돼 조직 속에 있으면서, 회의 끝 난지도 모르며 앉아 있고 졸업생만 일어서야 할 구령에도 벌떡 일어서고 하는 짓이 거듭돼 창피를 느꼈지만,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1975년 2월부터 초여름에 걸쳐, 너더댓 번 신비스런 체험을 했습니다. 마음이 지워지고 인식 의식이 사라지면서 그리고 한없이 편안한 신비의 상태에서, 내 몸과 남의 몸들과 주변상황을 그리고 마침내는 저 밑으로 아래세계를 내려다보는(눈으로 본 것이 아님) 그런 체험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머문 그 경지는 무슨 말로도 표현 못 합니다(言語道斷). 엄청난 체험이었습니다. 다시 몸으로 돌아오면서, 모든 의문과 번뇌가 마치 구름 걷히고 푸른 하늘 나타나듯이 몽땅 뽑혔습니다. 그리고는 한없는 마음의 평화가 찾아 왔습니다. 그 체험으로 저는, 마음이란 본시 없고 없는 그 마음이 일어날 때에 한해서 「나」가 「세계」 속에 존재한다는 믿음을 갖게 됐습니다. 「죽음」도 거짓이 됐습니다.
그 후로 「천기(天機)의 비밀」을 간직한 채, 저는 서울시립대학교환경공학과를 창설하고 발전시키는 일에 온 몸을 던졌습니다.

먼 뒷날 퇴직 무렵 경전(經典) 및 어록(語錄) 등을 공부하면서 알아 낸 바로는, 「멍청히 앉아 있기」가 바로 관심법(觀心法) 수행이었고, 엄청난 체험이 그 유명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였고, 무슨 짓인지도 모르면서 한 행(行)이 금강경(金剛經)에서 말하는 무소주행(無所住行, 한다는 생각 없이 행하는 것)이었고, 창피를 무릅썼던 습관은 전생으로부터 이어진 원습(原習)이었습니다. 그리고 체험한 그 경지는 천기가 아니라, 수행자가 견성(見性)할 때 만나는, 하나의 이정표 같은 것이었습니다. 스승 없이 혼자 하다 보니 그리 됐는데, 그 체험에 만족한 나머지 후속 수행을 접었던 그 당시의 실수가 너무나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다시 명상을 하게 됐던 것입니다.

길상사에서는 주력선(呪力禪)을 했고, 그 후 서울 강남 봉은사(奉恩寺)에서는 간화선(看話禪)을 했습니다. 도반(道伴)들과 함께 매달 20일 정도 그리고 하루 서너 시간을 좌복(坐服) 위에 앉아 지냈습니다.

 
주력선이란 마음속으로 주문(呪文) 외우는 선 수행을 일컫는데, 이를테면 「옴마니반메홈, 옴마니반메홈, ……」 하고 일념으로 외우다 보면, 그 가피(加被)의 힘으로 경계(經界)를 체험하며 나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주력선입니다. 경계란, 명상 중에 나타나는 불가사의(不可思議)의 경지를 뜻합니다. 이를테면, 또 다른 「나」가 좌선중인 나를 지켜보고 있다던가 하는 일이 그것입니다.

   
   간화선은 화두(話頭) 탐구의 선 수행을 말함인데, 화두란 수행자가 일심으로 의심해 들어가는 과제입니다. 그러면서 결코 풀릴 수 없는, 그런 과제 ……. 다시 이를테면, 「(몸이 아닌) 나는 누구인가?」 따위의 것이 그 것입니다. 가르침에 의하면 화두란 마치 부지깽이 같은 것이어서, 모든 번뇌가 타 없어지고 마음이 오직 그 하나에만 머무는 마지막 순간에는, 그것마저 타 없어지면서 마음이 사라집니다. 당연히 몸도 「세계」도 사라집니다. 왜냐하면, 몸은 마음이 만든 것이고 「세계」는 그 몸의 눈이 보는 것이기에 ……. 그러면서 「나」는 「참나」에 흡수되어 사라집니다. 「나」란 우리가 일상적으로 내가 어쩌고저쩌고 하는 그 나(ego)입니다.
독자들께서는 다소 혼란스럽고 믿기지 않고 그럴 수 있겠습니다만, 이 모든 것이 명상으로만 체득할 수 있는 불립문자(不立文字)의 영역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참나」 또는 「진아(眞我)」는 없이 있는 「나」이며, 다른 말로는 「진여(眞如)」입니다. 그리스도교와 유대교 이슬람 등 계시종교에는 비슷한 용어가 없는데, 그 이유인즉 사후 하느님나라 영생 세계는 지상에서의 「나」라는 정체성이 어떤 형태로든 보존되는 세계라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각설하고, 저는 10년 사이에 경계를 열 번 정도 체험했습니다. 수행이 진척됨에 따라 보다 더 높은 차원의 경계를 체험하기도 하고 안하기도 하는 데, 그 순서를 차제(次第)라고 합니다. 차제는, 수행자가 올바른 길로 접어들고 있음을 암시해 줌과 동시에 지루함을 이기며 더욱 분발 노력토록 하는, 그런 힘이 있습니다. 저에게 그런 차제가 나타난 것은, 진아(眞我)의 가피였고 대단한 행운이었습니다.


그러면서 2012년 정초에, 다시 신비한 체험을 했습니다. 먼저 때보다 차원이 높았습니다. 환(幻)이 무너지면서 그리고 몸으로부터 해방되면서 나타난 그 지복(至福)의 차원은, 다시 어떤 말로도 표현 못합니다. 엄청난 환희(歡喜) 끝에 또다시 찾아 온, 한없는 마음의 평화 ……. 머물러 있지 않고 환의 사바(sabha)세계로 돌아온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만, 그 체험을 간직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여한이 없습니다. 송구스럽지만 그렇습니다.
지식으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차원을 억지언어로 나타내자면, 엄청난 신비의 빛(光輝)에 더한 신비의 안락(安樂)이라고 할까  …… , 아무튼 세상의 어떠한 가치도 행복도 무의미해지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현상세계(現象世界)란 가상현실(假像現實, virtual reality, 약칭 VR)과 같은 것입니다. VR이란, 「컴퓨터로 만든 가상공간에서 마치 현실과 같은 체험을 느끼게 하는 상태」를 뜻합니다. VR장치를 얼굴 위에 쓰면, 마치 내가 직접 행하는 것과 같은 환상(幻像)의 장면이 눈앞에 전개됩니다. 세계일주여행 프로그램이 담긴 버튼을 누르면, 내가 진짜로 세계 곳곳을 누비며 여행하고 있는 듯이 느끼게 됩니다. 내가 다시 태어나 누리고 싶은 생애(生涯) 프로그램 버튼을 누르면, 정말로 환생(還生)하여 그렇게 살고 있는 듯이 느끼게 됩니다. 

 
저는, 사바세계도 VR와 같은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시간 공간의 틀 안에서 지금 전개되고 있는 일체의 이 현상은, 거짓 「나」가 「참나(眞我)」를 가리며 주인행세를 하고 있는 환의 세계라 믿고 있습니다.
둘 사이에 다른 점이 있다면, VR장치를 떼는 순간 혼란이나 허탈감이 엄습하는 것에 반하여 사바의 종료 내지 소멸은, 그 순간부터가 엄청난 지복이라는 점입니다. 일체의 고가 소멸된 그리고 사바의 어떠한 성취도 가치도 행복도 빛을 잃는, 상락(常樂)의 지복 …….

너무나 복 받은 생애였습니다. 업장(業障)을 극복하고 누가 시키지도 않은 계율적 삶을 살면서 명상에 빠져들었던 소년기 청년기, 625참전 군복무와 그 후의 환경보전분야 교수직 수행 등 의미 있었던 삶, 다시 퇴직 후의 명상과 도합 두 차례나 누린 「참나」 체험 ……. 모든 것이 저의 의지를 초월한 진아(眞我)의 가피였습니다. 참으로 고마웠습니다.

나무시아본사석가모니부처님
2017. 2. 20.
덕산 김동민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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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김동민 지음, '명상 - 고를 넘어 지복의 속으로,' 신광문화사 펴냄 (2015) pp 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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